추석이다. 한동안 떨어져 있던 친지, 친구들과 모여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울 시간이다.
마당에 둘러앉아 술 한잔 기울이며 하나둘씩 자신의 지나온 삶들을 펼쳐보이는 시간.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그리운 얼굴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기 마련이다.


테헤란로 한복판에 추석 차례상을 펼쳐놓고 모여 앉는다면 과연 누가 화제의 중심에 떠오를까. 그 때 그 시절 화려했던 명성을 자랑했던 면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잊혀진 스타들의 근황을 수소문해봤다.


◆1세대 스타들 '이제는 중견'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벤처기업 1세대를 풍미했던 스타 플레이어들은 누가 있을까.


무엇보다 국산 워드프로세서 '한글'의 개발 주역들이 첫 손에 꼽힌다. 이찬진, 김형집, 우원식, 김택진이 주인공.


이찬진 사장은 한컴을 떠나 현재 포털업체 드림위즈 대표로, 김택진 사장이야 세계적인 온라인게임 업체 엔씨소프트의 CEO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김형집, 우원식 두 사람은 한글과컴퓨터 CTO였던 박흥호씨와 함께 나모인터랙티브를 설립, 또 하나의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을 일궈냈고 올초 엔씨소프트에 합류했다. 한글 개발 주역 4인 가운데 3인이 현재 엔씨소프트에서 다시 뭉친 셈이다.


한글과컴퓨터 창업멤버이자 나모인터랙티브 설립자이기도 한 박흥호 사장은 올초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시련을 거쳐 최근 다시 한글과컴퓨터로 복귀, 친정에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한글'과 함께 국산 소프트웨어의 대명사로 꼽혔던 프로그램은 '이야기'.


1989년 경북대 컴퓨터동아리 하늘소 멤버들이 개발한 '이야기'는 90년대 중반까지 손꼽히는 히트 상품이었다. 당시 하늘소 멤버였고, 이후 큰사람컴퓨터를 설립했던 인물이 이영상씨.


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진출, VoIP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가던 이영상 사장은 올 3월 큰사람컴퓨터를 에스에프에이에 넘기고, 10여년의 큰사람 시대를 마감했다. 지금은 삼성물산에 재직중이다.


'한글', '이야기'와 함께 3대 소프트웨어로 꼽혔던 바이러스 백신 'V3'의 주인공 안철수 박사는 90년대 중반까지 재야의 스타로 유명했다. 95년 한글과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승승장구, 지금은 국내 대표 벤처인으로 우뚝 섰다.


90년대초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국산 그룹웨어 쌍두마차 시대를 연 핸디소프트 안영경 사장과 나눔기술 장영승 사장도 늘 주목을 받았던 인물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안영경 사장은 1996년 일본 아마다그룹 진출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다, 98년 핸디소프트USA를 설립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이후 미국 지사 활동에 전념하면서 국내 활동은 거의 뜸한 상태.


핸디소프트가 꾸준히 그룹웨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반해, 나눔기술 장영승 사장은 그룹웨어 사업에서 손을 떼고 지금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하고 있다. 2002년 그룹웨어 사업부문을 버추얼텍에 넘기고, 자신은 인터넷 음악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렛츠에 전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을 오가며 중국내 벤처단지 개발 등 부동산 개발 사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


휴먼컴퓨터와 한메소프트도 스타 반열에 올랐던 기업들. 휴먼컴퓨터는 정철, 허진호, 최성호 등 지금은 IT업계 중견들을 키워낸 초기 벤처기업의 선두주자중 하나였다.


휴먼컴퓨터 설립자였던 정철 사장은 삼보컴퓨터의 해외진출을 진두지휘했던 인물로도 유명했다. 99년 미국에서 '이머신즈 돌풍'을 주도했고 2000년 3월 나스닥 상장까지 이끌었다. 2001년 하반기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기술고문을 맡고 있으며 포스트PC 등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며 새출발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휴먼컴퓨터 개발이사를 거쳐 국내 인터넷 전도사로 꼽혔던 인물이 허진호씨. ISP 업체인 아이네트를 설립, 인터넷 비즈니스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시켰던 인물이기도 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아이네트를 외국계 업체인 피에스아이넷(PSInet)에 매각한 뒤 2000년에 네트워크 관리 솔루션업체인 아이월드네트워킹을 설립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지난 7월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선임돼 국내 인터넷업계의 대변자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메타자'로 유명했던 한메소프트 이창원 사장은 지금은 온라인 영어교육 서비스 '마이퀵파인드' 등 인터넷 콘텐츠 쪽으로 눈을 돌리고 예전의 영광 재현을 노리고 있다.


캐나다에서 귀국, 국내 최초로 워드프로세서를 선보였던 강태진씨도 98년부터 씽크프리를 설립 오피스 소프트웨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큰사람, 핸디소프트, 나눔기술, 한메소프트, 휴먼컴퓨터 등은 90년대를 관통하며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화려한 조명을 독차지했던 기업들이다.


당시를 주름잡았던 벤처스타들 대부분이 거의 이 회사의 멤버들이었다.


이들 1세대 스타들은 이제는 IT업계의 중견으로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만 시대가 새로운 스타를 원하듯, 이제 스타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있을 뿐이다.


◆부침의 3년, 닷컴 스타들


2000년 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론 닷컴 만한 곳이 없었다. '대박 신화'의 열풍 속에 전 사회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품 붕괴와 함께 닷컴 스타들도 극심한 부침을 겪었다. 사라진 스타들 가운데는 아름답지 못한 뒷모습을 보여준 경우가 많아 씁쓸함을 더해준다.


닷컴 열풍의 원조,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은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 회사를 떠난 후 일본에서 다시 닷컴 비즈니스를 해오다, 지난해부터 국내 활동을 본격화한 상황. 비전텔레콤을 인수한 이후 다시 이 비전텔레콤을 통해 코스닥 등록기업인 아이빌소프트 등을 인수하며 물밑에서 활발하게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2001년 9월 네띠앙을 떠났던 홍윤선 사장도 1년여 기간 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다 올 4월 이메일 마케팅 업체 웹스테이지를 설립하고 재기에 나섰다. 현재 직원은 다섯명으로 이메일 마케팅서비스인 오즈메일러(www.ozmailer.com)를 선보였다.


증권정보 포털 팍스넷의 주인공 박창기 사장은 2002년 SK텔레콤이 팍스넷을 인수한 이후 사임하고 시스템 트레이딩 전문업체인 프라임웨이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000년 동창회 신드롬을 일으켰던 아이러브스쿨의 김영삼 사장은 금양과의 경영권 분쟁 와중에 회사를 떠나 지금은 부친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을 도우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C통신 시대 천하를 다퉜던 나우콤의 대표 강창훈 사장도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이면 본격 재기에 나섰다. 2000년 1월 두루넷이 나우콤을 인수하면서 회사를 떠났던 강 사장은 그후 게임업체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으며 현재 경영컨설팅 전문업체 설립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웹에이전시 열품의 주인공 홍익인터넷의 노상범 사장은 필리핀에서 모바일 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다. 토크라인이라는 회사의 부사장으로 재직중이며 국내 콘텐츠를 수입해 필리핀 현지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인티즌의 박태웅 사장은 자무스 대표, 나모인터랙티브 부사장을 거쳐 지금은 안철수연구소 이사로 재직중이다.


재기에 나선 인물들과 달리 아직은 활동을 삼간 채 조용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물들도 많다.


97년 야후코리아를 설립해 2001년 4월 돌연 사임할 때까지 닷컴 열풍의 한 가운데 있었던 염진섭 사장이 대표적.


그는 2001년 12월과 2002년 5월 자신이 투자한 업체인 트레블라이너와 배움닷컴 대표이사로 현역에 복귀하는 듯 했으나 2002년에 모두 사임하고 현재 공식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투자업체를 관리하며 자녀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이빌소프트의 진교문 사장은 2002년 2월 코스닥 등록 후 바로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그해 8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지금은 뉴질랜드에 가족과 함께 체류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아성에 도전했던 인터넷 서점 예스24 이강인 사장 역시 와우북과 합병 뒤 실적 부진과 대주주간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면서 합병 1년만에 지분을 처분하고 두문불츨.


인츠닷컴의 이진성 사장과 새롬기술의 오상수 사장은 법정을 오가는 최악의 시련을 겪은 경우.


400억원 펀딩의 주인공이자, 인터넷 광고 사이트 '보물찾기'로 유명세를 한몸에 받았던 이진성 사장은 2001년 8월 실적 부진에 따른 주주와의 갈등 등이 불거지면서, 회사를 담보로 무리한 대출을 했다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2년 9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지금은 아내와 함께 어린이 전용 미용실을 운영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


인터넷 무료전화 다이얼패드로 닷컴 최고의 스타로 부상했던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은 허위공시,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지난 7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비운의 스타가 되고 말았다.


◆화제를 뿌리고 떠난 사람들


90년대 소프트웨어 스타들이나 2000년대 닷컴 스타들 말고도 IT업계에 화제를 뿌렸던 인물들은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멀티미디어 저작도구 '칵테일'로 10대 돌풍을 일으켰던 이상엽 칵테일 사장이다.


'한국의 빌게이츠'라는 수식어 속에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이상엽 사장은 현재 미국 체류중. 칵테일에서 회사명을 '엘에스디컴퍼니'로 바꾸고 대표로 재직중이며 업종도 인터넷 솔루션 개발로 바꾼 상태.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며 올해말 컴백할 예정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


99년 8월 웹호스팅 사업을 시작, 한때 선두업체로 부상하며 주목을 끌었던 인터넷제국 최건 사장도 화제의 주인공.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결국 자금난을 겪다가 2000년말 회사를 드림디스커버리 등 창투사에 넘겼다.


그는 이후 2001년말 IT엔터테인이라는 IT복합공간 프렌차이즈 회사를 차렸으나 중도하차했다. 다시 2002년 4월 이메일 호스팅 업체인 GC프로젝트를 세워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같은 해 12월 다시 부도를 내고 도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벤처의 대부 이민화 메디슨 회장도 회사 부도 후 두문불출하다가 지금은 조심스럽게 재기를 노리고 있다. 올 초부터 러시아를 오가며 러시아 기술을 도입하려 한다는 소식이다. 휴대폰을 이용해 건강상태를 체크해주는 기술이라는 소문.


리눅스 전문업체 1호로 주목을 받았던 리눅스원의 김우진 사장은 몇몇 중소기업을 자문해주고 있다.


국내 최초의 리눅스 배포판 알짜리눅스 개발자 이만용씨는 리눅스코리아 CTO로 재직하며 무선랜 인증과 디렉토리 서버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97년 제이텔을 설립, 국산 PDA의 대표주자로 주목받았던 신동훈 사장은 2001년 자신이 약속했던 경영실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임, 실적 부진으로 물러난 후 현재 조용히 재기를 꿈꾸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스타들이 뜨고 질 것인지. 가뜩이나 침체된 IT 시장에 화려한 스타 탄생과 함께 IT 재도약을 기대해본다.


inews24 /김상범기자 ssanba@inews24.com
기사게재일 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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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키르히아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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