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20101027131446

[칼럼]한국식 고용구조의 병폐 SI에서 희망 찾는법
김국현 IT평론가 http://goodhyun.com
2010.10.27 / PM 01:17

[지디넷코리아]"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따라 다니는 부속품으로만 인정하는 풍토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정부구매제도에서까지 소프트웨어의 공과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으며 어느 업체가 힘겹게 개발해 좋으면 무단으로 복제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이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정부지원에서까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풍토.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과연 소프트웨어 산업을 우리가 이렇게 무시해야 할 것인가 그 의문점은 바로 몇 전문기관의 예측에서도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 입증된다"

 

마치 오늘 아침에 나온 듯한 이 기사. 실은 1985년 4월 23일자 매일경제신문의 한 꼭지다. 25년전부터 지금까지 소프트웨어는 늘 부속품이었고, 산출물로서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독립적 가치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정부는 아무 생각 없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늘 이 모양이었던 것이다. 잠시 반짝 이상계와 환상계가 형성될 무렵 각각의 세계를 형성한 주역들에게 월계관은 주어졌지만, 사회 전체에 이들의 이상과 환상이 충분히 차고 넘치고 있다고는 하기 힘들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 엔씨소프트, 넥슨의 근무 환경은 지극히 훌륭하지만 소프트웨어를 부리는 것이 목표인 이들의 고용 흡수력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업계 종사자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릴 수는 없는 일. 이들은 분명히 조금씩 각자의 세계를 바꾸고 넓히고 있지만, 정말 바뀌어야 할 세계는 여전히 현실 안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고용되어 있는 이 현실 안의 세계. 제조, 물류, 유통, 금융, 농업, 건설 등등 우리의 삶과 생활과 사회. 우리가 흔히 국가 경쟁력을 말하는 세계는 바로 이 곳이다. 소프트웨어의 참된 역할은 이 곳을 이상계와 환상계의 변방으로 끊임 없이 밀어 붙이며 그 마찰 속에서 변혁을 일으키는데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바로 현실계에 고용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아키텍트 등 소프트웨어를 아는 노동자들의 힘이다.

 

우리의 문제는 이 힘이 쇠약해지고, 그나마 있던 힘들 중 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도시유목민 들은 이상계와 환상계로 떠나가고 있다는데 있다. 물론 최전선으로 가고 싶은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전선으로 창업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을 달랠 안정적 삶을 찾아 간다면 이는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실계의 소프트웨어업, 즉 SI는 한국 고용 구조의 병폐를 가장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분야가 되어 버렸다. IT의 1년은 바깥 세상의 7년. 바야흐로 사회의 거울인 만큼 축소판의 역할마저 하고 있다.

 

일용, 임시, 계약 등 온갖 기간제 근로에, 파견, 도급, 용역, 사내 하청 등 간접고용은 기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 잣대 고용이 만들어지고 있는 대표적 업태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신자유주의에 물들은 갑 기업들이 내부유보를 쌓아가며 고용을 축소한 결과일까?

 

천만의 말씀. 오히려 이 씁쓸한 결과는 현실계 프로젝트마다 목격되는 아무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 좀비 사원들의 존재에서 볼 수 있는, “고용안정성” 덕이다. 갑(그리고 더불어 을) 규모의 기업에서 해고는 상당히 힘든 일이고, 고도성장기를 통해 큰 기업들은 종신고용 연공서열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현실계 기업의 근로자는 주기적으로 보직 전환하여 고용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일반 사무직 위주로 채용하는 편이 고용주 입장에서는 안전이고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는 굉음이 들려도 이 시대를 이끌 모난 인재를 고용하는 대신, 둥글둥글한 일반적 인재를 고용하고 이 일반 인재가 특수 인재에게 하청을 주는 형태를 취한다. 왜냐하면 특수 인재를 고용했다가 시대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 전문 분야가 명확한 이들을 떠나 보내기 힘듬을 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직 내에는 시대를 열어 젖힐 신선한 인재는 없고 일반 관리자만 가득해진다. 놀랍게도 IT의 문제는 청년 실업의 문제와 같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기업의 CEO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고용 유연성을 보장 받지 않는 상태에서 갑자기 수요가 생겼다고 하자. 유연성이 높은 북구 국가라면 아마 인재 확보를 위해 바로 다 고용해 버렸을 것이다. 해보다가 아니면 집에 가라고 하면 되니까. 그러나 한국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RFP를 발행, 하청을 모집한다. 수요를 해소하고 바로 떠나 보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적으로 꼬리를 물며 갑을병정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은 전문성을 잃은 채 관리자가 되어 늙어 가는 정규직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비정규 취급을 받는 전문직의 리스크를 알기에 섣불리 전문성을 취하려 들지 않고 조직이 원하는 인재로 길들여져 간다. 그러나 그 후 여하간의 이유로 그 조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겨울. 아무도 앉을만한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은, 하청의 대명사 건설업과는 다른 일. 어느새 21세기, 이제는 그 기업 비즈니스의 성장과 생산성과 생존을 좌우하는 일이 되었다. 이 과업을 하청 받은 생면부지 타인이 하고 있었으니 국가 생산성이 말이 아닌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사실, 을 밑의 병, 정으로 내려 가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의미가 없고, 이윤율 저하로 심지어 워킹 푸어(working poor) 상태로 진전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정상 사회에서는 기업에 직접 고용되어야 할 인재들이 다단계 간접 고용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조와 노동계도 관심 없다. 소프트웨어 벤처는 어느새 인력 파견업이 되어 버렸건만.

 

희망은 자조(自助)와 개혁에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자기 계발을 해 봐야 의미 없음을 깨닫고, 이를 아예 포기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일도 이해가 간다. 컴퓨터 공학 및 전산이 인기가 없어지고, 3D 업종이라 기피한지 오래. IT는 곧 미래지만 그 일은 하기 싫다는 이율배반이 젊은이들. 아무리 소프트웨어 공학, 서비스 공학을 연구해 봐야 돌아 오는 미래가 다단계 하청의 하부 기술자라면 패기 없음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누구 탓을 하는 대신 함께 풀어야 할 문제와 그리고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가 모두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1) 만약 여러분이 현실계에서 일하고 있다면 아무리 지쳤어도 스스로를 이상계와 환상계의 변경으로 밀어 붙일 것.

 

오픈 소스 활동에 참여하여 자신의 평판을 현실 밖 세계에 인지시키는 일, 주말에 작업한 앱을 앱스토어에 제출해서 어떻게 가치가 움직이는지 직접 느껴 보는 일, 모두 현실계식 고용에서 벗어나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 가는 첫 발자국이다. 아무리 현실이 괴롭고 지쳐도 잠을 줄이고 여가를 줄여 해 볼만한 일이다. 예를 들어 최근 모바일과 소셜 앱스토어는 추천 공간이다.

 

그 결과 여러분은 두 가지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상계와 환상계로 도주할 수 있는 힘. 혹은 그 쪽으로 이 현실계를 이끌고 갈 수 있는 힘. 어느 쪽이 더 숭고한 것임은 그 과정에서 더불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2) 그러나 마지막으로 더욱 급한 것은 바로 이 사회 구조의 숙제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 일이다. 왜 기업은 외국처럼 백발의 프로그래머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지, 왜 청년들의 일자리는 없어졌는지, 무엇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 왜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 절망을 함께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정책을 이야기하고, 함께 연대하고, 지지하고, 투표하고, 그렇게 사회를 바꾸며 “나만의 왕국”을 넘어 “우리의 왕국”을 꿈꾸는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꿈꾸던 선진국, IT 강국이란 바로 이러한 과정을 말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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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키르히아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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